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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의 위성안테나 (2005년 11월 26일) 차이나의 기원이 다른 나라와 차이가 많다고 해서 ‘차이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한 조선족의 농담처럼 중국에 살다보면 보통 한국인의 시각으로는 납득하지 못할 일들이 가끔 생긴다. 어떤 사건이나 일의 발생도 물론이려니와 문제의 해결방법과 처리결과도 우리와 차이가 많아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잣대에 맞춰 중국을 재단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상대를 이해하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연변에서 위성안테나를 각 가정이나 업소에 설치하는 것은 현재 불법이다. 비단 연변 뿐만아니라 중국의 일부지역을 제외하곤 대개 불법으로 돼 있다. 그러나 연변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 조선족 마을과 아파트 등의 적지않은 가정에는 불법 위성안테나가 알게 모르게 설치돼 있다. 다만 드러내놓지 않을 뿐이다. 기자는 지난해 동북의 헤이룽장성과 지린성, 랴오닝성을 비롯해 심지어 내이멍골자치구 지역의 조선족 경상도 마을에서도 위성안테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위성안테나가 있고 없는 것이 조선족과 한족을 구별하는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정도로 위성안테나가 있는 집은 모두 조선족 가정이었다. 다만 유일하게 위성안테나가 없던 한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은 연변의 어느 한 산골마을이었다. 마을 촌장은 당시 우리에게 ‘이곳은 당국의 단속이 잦아 설치할 수 없어요. 지붕에 감춰놓고 창고에 처박아 놓아도 다 가져가서 더 이상 안테나 설치하는 걸 포기했다’는 말을 했다. 전파의 무차별 송신은 곧 문화적인 침략이라고 할 정도로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과 체제를 보전하기 위해 전파 수신을 통제하고 있다. 닫힌 사회일수록 인터넷과 전파 통제의 정도는 더 심하다. 그러나 열린 사회를 점차 지향하고 있는 현재의 중국이 위성안테나를 단속하는 문제에 있어 성시마다 다른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정치적 고민이 있음을 짐작케 한다. 그것은 개혁과 개방의 거센 물살의 흐름에 온 몸을 맡기고 있으면서도 그 속도와 수위를 조절하는 중국의 노회한 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점은 중국의 소수민족의 정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난 봄 노동절과 가을 국경절을 전후해 연변에서는 위성안테나를 대대적으로 단속한 사건이 있었다. 연변TV를 통해 위성안테나를 철거하지 않으면 5000위엔의 벌금을 물리고 강제로 떼어 간다는 경고성 보도가 나온 뒤 당국의 단속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내가 살고 있는 모 아파트에는 특히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러기에 위성안테나도 다른 아파트보다 많이 달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정체 모를 단속반원들이 트럭을 타고 아파트에 들이닥쳐 고가사다리를 이용해 위성안테나를 마구 떼어 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한 꼬장꼬장한 한국사람이 온 몸으로 단속반원들에게 맞서는 사태가 발생해 아파트가 한바탕 떠들썩했다고 한다. 단속반원들은 날씨도 궂은데다가 고가사다리의 길이도 모자라 저층만 철거하고 고층에 있는 위성안테나는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러나 위성안테나가 있는 주민들은 하루를 불안에 떨어야 했다. 그 후 다시 온다고 하던 단속반원들은 몇 개월이 지나도 오지 않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주민들의 반항이 너무 거세 다시 오지 않았다’ 고도 하며 ‘한국사람이 많은 동네라 사정을 봐줬다’ 고도 했다. 어쨌든 우리 동엔 한족, 조선족, 한국사람 가릴 것 없이 위성안테나가 달려 있는 집이 10여개가 넘었는데 얼마 있지 않아 우리 집 위성안테나 하나만 외벽에 달랑 붙어 있었다. 곧이어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끝발 있는 주정부아파트와 공안국 아파트도 몇 트럭씩이나 위성안테나를 강제로 철거해 갔다고 했다. 당시 위성안테나 단속은 성역이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단속기간이 지난 후 몇 달이 지나자 다시 우후죽순처럼 위성안테나가 다시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벌금을 실제로 냈다고 하는 사람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유선방송업자와 검찰, 공안이 함께 단속을 하면서 단속반원들이 강제로 압수해 간 위성안테나가 다시 시중에 헐 값으로 되팔린다는 사실이었다. 이쯤 되면 단속의 목적이 딴 데 있음을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단속기간 동안 바깥 벽에 있던 안테나가 집안 발코니로 잠시 이동한다는 것 뿐 ‘눈가리고 아옹’ 하는 식의 단속이 남기는 상처는 당국에 대한 불신감만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 우리 아파트 외벽에는 단속 전과 같은 모양으로 위성안테나가 여러 개 달려 있다.(사진) 다만 몇 몇 집은 안테나가 집안으로 들어가 커텐 뒤에 숨겨져 있다. 집 안에 있는 위성안테나는 전파 감도가 좋지않아 일부 방송을 시청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는데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한국TV를 보기위해 설치하는 큰 접시 모양의 위성안테나와 TV수신기는 보통 600위엔 정도인데 설치비까지 포함하면 650위엔이 든다. 한국의 3대 방송은 물론 KBS코리아와 음악, 영화, 바둑, 종교 등 유선방송을 볼 수 있는 이 위성안테나는 수신감도도 양호한 편이다. 한국이 1999년에 발사한 무궁화위성 3호기의 주파영역에 한반도와 중국연변, 일본과 동남아 지역의 일부가 포함됨으로써 위성안테나와 수신기만 달면 한국과 마찬가지로 생생하고 또렷하게 한국의 TV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한편 중국의 유선방송을 보려면 케이블 연결비 300위엔을 내면 된다. 중국에는 각 성마다 방송국이 따로 있어 시청자들은 수 십개의 다양한 채널을 고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위성안테나와 유선방송을 달지 않으면 TV시청이 불가능할 정도로 흐리고 잡음이 많다. 현재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을 왕래하는 가운데 한국방송의 TV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조선족들은 드물다. 특히 같은 언어를 사용해 방영하는 한국의 드라마 없인 ‘인생의 낙이 없다’는 조선족 노인들도 더러 있다. 마치 미국의 LA 한인타운처럼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살고 있는 평범한 조선족들은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해도 일상생활에 불편할 것은 별로 없다. 우리 아파트 아래층에 살고 있는 한 할머니는 평생을 중국에 살아도 몇 마디 중국어만 할 뿐이다. 연변에는 연변조선족방송이 있긴 하지만 한국에 한번도 가 보지 못한 조선족 노인들이 한국의 방송을 직접 시청할 수 있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인 것이다. 한국의 언론이 전해주는 뉴스와 한국의 드라마는 중국 드라마와 달리 삶에 진솔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자연히 한국TV 프로그램을 좋아 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조선족은 연변에 살고 있는 한국인보다 한국의 소식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조선족들이 한국의 TV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바탕에 한민족의 정서적인 동질성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그건 한족들이 느끼는 유행성 ‘한류’와는 다르다. 한번도 가보지 않은 한국인데도 불구하고 한국의 드라마를 보면 그렇게 가까울 수가 없고 살가운 것이다. 연변의 조선족 인구와 조선족 학교가 점점 줄어들고 조선말을 잘 할 줄 모르는 조선족 어린이들이 점점 늘어가는 연변의 현실에 한국방송의 TV프로그램과 한민족 인터넷 네트워크는 한국과 연변을 연결해 주는 또 하나의 물리적 핏줄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 당국이 이처럼 연변에서 위성안테나 단속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종교의 자유가 일부 제한된 중국에서 위성을 통한 선교방송이 그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단지 그것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메스컴의 대효과이론에 비추어 볼때 현대사회에 있어 특히 인터넷과 TV매체가 수용자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여과없이 방영되는 한국의 TV 프로그램이 고와 보일리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봄에 한국의 TV 각 방송사들이 우리 고대사의 새로운 지평을 넓히는 대하사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제를 주연으로 하는 ‘태왕사신기’나 ‘연개소문’ 그리고 7세기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삼한지’ 같은 사극들이 그것이라고 하는데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중국에서 보면 틀림없이 껄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다. 내년 봄, 기자가 떠나고 없을 이곳 연변땅에 위성안테나 철거단속이 더 심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거실로 들어간 위성안테나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의 한 아파트 거실에 위성안테나가 설치돼 있다. 이 집은 지난 번 위성안테나 집중철거 단속기간 동안 바깥에 설치됐던 안테나를 거실로 옮겼다. 안에 설치하면 커텐으로 가려있어 바깥에서는 안테나가 보이지 않는다. 건물 내부에 있는 위성안테나는 감도가 좋지 않아 일부 한국의 방송채널을 볼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위성안테나는 이런 식으로 집 내부에 설치돼 있다. 랴오닝성 센양시 소가툰구 화원신촌 아파트 위성안테나 지린성 지린시 한 조선족마을 농가에 있는 위성안테나 조선족 마을인 지린성 지린시 용담구 이가툰의 한 가정에 있는 옥외 위성안테나. 연변을 제외한 지린성, 헤이룽장성이나 랴오닝성의 조선족마을의 위성안테나에 대한 당국의 단속은 연변보다 심하지 않아 보였다. |
* 출처 - http://community.yeongnam.com/yeongnam/html/community/writer/park/01/Read.shtml?num=17976&page=5&keyField=&key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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